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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폐(CBDC)와 금융질서의 재편

info-eco-1 2025. 10. 25. 18:20

1️⃣ 화폐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 중앙은행이 만든 ‘디지털 돈’의 등장

디지털화폐(CBDC)와 금융질서의 재편


화폐는 오랜 세월 인류 경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본질이 바뀌고 있다. 디지털화폐, 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가 세계 금융 질서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CBDC는 말 그대로 ‘국가가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돈’으로, 기존의 지폐·동전과 달리 전자 형태로만 존재한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화폐’라는 점이 다르다.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거래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각국은 CBDC를 ‘결제 혁신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를 상용화 단계에 진입시켰고,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연준은 신중하지만, 여러 주정부가 자체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디지털 원화’ 파일럿 시스템을 가동하며, 금융기관·IT기업과 함께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즉, 전 세계가 ‘현금 없는 사회’를 넘어 ‘국가가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경제’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2️⃣ CBDC가 가져올 금융 구조의 대변혁 — 은행의 역할이 달라진다


CBDC의 등장은 단순히 ‘현금의 디지털화’가 아니다. 그것은 금융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하는 혁신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자금의 흐름은 은행을 통해 이뤄졌다. 중앙은행 → 시중은행 → 개인 및 기업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였다. 하지만 CBDC가 도입되면 중앙은행이 개인의 전자지갑에 직접 돈을 송금할 수 있게 된다. 즉, ‘중개자 없는 금융 시스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상업은행의 예금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사람들이 CBDC를 보유하면, 굳이 은행에 예금을 맡길 이유가 줄어든다. 은행의 유동성 관리와 대출 기능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동시에 CBDC는 정부의 통화정책·재정정책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예를 들어 경기 부양이 필요할 때, 중앙은행은 CBDC를 통해 국민의 전자지갑으로 직접 지원금을 입금할 수 있다. 또 자금의 흐름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투명하게 추적되므로, 자금세탁·탈세·불법 송금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투명성은 ‘감시 사회’라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개인의 거래 내역이 완전히 추적 가능하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CBDC는 ‘기술적 진보’이자 ‘사회적 딜레마’를 동시에 안고 있다.

 

3️⃣ CBDC 시대의 승자는 ‘신뢰와 데이터’를 가진 자


결국 CBDC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Trust) 이다. 돈이란 본질적으로 ‘신뢰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가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 화폐는 단순한 코드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가 간 협력과 국제 표준화가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CBDC의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멀티 CBDC 네트워크’를 제안하고, 한국·중국·태국 등은 국경 간 결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데이터 주권’이다. CBDC는 거래 데이터의 보고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를 쓰는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금융정책뿐 아니라 산업정책, 세제 설계, 소비 분석에까지 활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CBDC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데이터 경제의 엔진’인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은 통화 발행 능력보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한국이 CBDC를 도입한다면, 금융기관·IT기업·정부 간 협력으로 신뢰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블록체인·인공지능·클라우드 인프라를 결합한 ‘지능형 금융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CBDC는 결국 화폐의 디지털 전환을 넘어, 금융 패러다임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그것은 ‘돈의 혁명’이자 ‘질서의 재편’이다. 이제 세계는 물리적 지폐가 아닌, 신뢰가 보증하는 디지털 숫자를 새로운 자산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